K 미술의 ‘어머니 담론’을 찾아
(26) K 미술의 ‘어머니 담론’을 찾아
지난 1년 반가량 써 온 ‘미술의 창’을 개인적 사정으로 마감한다. 그동안 개별 작가에 관해 이야기하며 미술 작품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마지막 글에서는
www.lawtimes.co.kr
지난 1년 반가량 써 온 ‘미술의 창’을 개인적 사정으로 마감한다. 그동안 개별 작가에 관해 이야기하며 미술 작품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마지막 글에서는 한국 미술의 전반적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미술 해설을 할 때 나에게 항상 찾아오는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다. 서양 작품에 대해 글을 쓸 때와 한국 작품에 대해 글을 쓸 때, 어떤 불균형이 처음부터 작동하고 있다는 답답함이다. 세계무대에 한국미술을 알리려고 영어로 글을 쓸 때 이러한 답답함은 더욱 짙어진다. 서양 작품에 대해 글을 쓸 때는 서양 미술의 대모(大母) 격인 ‘서양 근대미술사’나 르네상스 이후 미술사라는 든든한 배경에 맞춰서 작가와 작품을 해설하면 되지만, 한국 작품에는 그런 ‘어머니 담론’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 미술사는 서양이라는 넓은 무대에서 긴 세월 동안 등장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자리매김해주고 이들을 흥미롭게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 미술사는 서양인들만 아니라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 세계 미술인들이 모두 읽는 경전처럼 되어 있다. 뛰어난 평론가와 미술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만들어낸 서양 미술사는 대단한 마력을 갖고 있다. 각자 특이한 개성을 분출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응집하여 마치 거대한 설치 작품처럼 독자의 눈과 지성을 강타한다. 깊이와 넓이를 지닌 현명한 어머니처럼 자식들의 다른 면과 비슷한 면들을 모두 품으면서, 자식들이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지적 후원자로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현대미술에는 ‘어머니 담론’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까지도 별로 진행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는 서양 미술사가 세계 미술계에 일찍부터 자리 잡고, 비서양권의 비평가나 작가들이 서양 미술사를 ‘보편적 내러티브’로 여기는 착시 현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한국 미술을 세계 무대에 소개할 때, 서양미술사를 준거점으로 한 평론이 대부분이다. 서양의 어떤 미술 경향에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며 그 아류(亞流)로 설명하거나, 서양의 어떤 미술 경향과 친소(親疏) 관계로 설명하거나, 아니면 서양미술사를 완전히 배척하고 한국의 ‘토종 DNA’가 만들어낸 미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서양 미술이 들어와서 발전해나간 역사를 살펴보면, 서양미술사를 준거로 한 해설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한국현대미술은 서양 미술을 모방도 하고, 어떤 때는 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판도 하는 부단한 ‘밀고 당기기’ 속에서 다른 어떤 것을 지향해 나갔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미술은 서양 미술사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독창성을 접했지만 그들의 성취를 복사하지 않았다. 서양미술사의 든든한 후원을 받았던 지배적 미술 담론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무언가에 에너지를 집중했다. 이런 성취를 이룬 한 가지 사례가 단색화이다 (지난 컬럼 ‘박서보의 유산: 한국적 미술담론의 세계화’ 참조).
그렇지만 단색화를 세계무대에서 설명하려면 ‘어머니 담론’이 없는 고아의 서러움을 느끼게 된다. 관객이나 평론가들이 서양미술사의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에 대해 “그건 아니다”라고 외치지만 “그럼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가 확실히 있고 그 이야기를 상대방이 알고 있다면 거기에 비추어서 설명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
지금 ‘K미술’이 세계에 많이 뻗어나가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개별 작가들이 고군분투해서 일궈낸 성취이다. 한국의 뛰어난 작가들은 ‘K미술’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내러티브가 없는 상태에서 거의 고아처럼 세계무대에 소개된다. (비록 고아라 하더라도, 미술적 조상과 사촌, 친구들의 영향과 비판을 흠뻑 먹고 자란 비밀을 간직한 고아라는 설명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최소한의 ‘어머니 담론’도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K미술이 진정으로 세계에 자리를 잡으려면 개별 작품에 대해 칭찬과 존경을 늘어놓는 백개의 평론보다 하나의 강력한 어머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게 시급하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역사는 꽤 많이 축적됐다. 개별 작가의 작품 세계에 바탕을 두면서도 그들을 공동체로 엮어 내고 그들이 몸담았던 물결을 내러티브로 구성해내야 한다. 그들이 서양미술과 어떤 교전을 했는지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기록의 단순한 합산이 아니다. 창조적인 우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
K 미술의 ‘어머니 담론’을 찾아
(26) K 미술의 ‘어머니 담론’을 찾아
지난 1년 반가량 써 온 ‘미술의 창’을 개인적 사정으로 마감한다. 그동안 개별 작가에 관해 이야기하며 미술 작품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마지막 글에서는
www.lawtimes.co.kr
'세계현대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초현실주의 (5) | 2024.09.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