琢光苑(탁광원: 光을 다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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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피는 매화가 더 붉네

어느 아파트 정원에서 찍은 홍매화를 올리며...

오늘 낮 기온이 17도 가까이 오르내리는 완연(宛然)한 봄 날씨다.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 매화가 붉음을 더하고 동내는 흰매화가 하얀 빛으로 담장을 물들였다. 붐비는 지하철은 출근족(出勤族)들로 인산인해다. 갑자기 7호선 지하철 1호 칸에서 한 여성의 당찬 목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온다.

 

‘여기는 임산부(姙産婦) 자리에요. 어서 일어나세요!’ 소리 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순간 이게 웬 일인가? 덩치 좋은 한 젊은이가 임산부자리에 염치없이 앉아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그 여성은 계속 외친다. ‘임신(妊娠)했는가요? 부끄러우면 어서 일어나요!’

 

젊은이는 뭐라고 변명(辨明)하면서 바위처럼 꿈쩍 않는다. 여성은 50여 번 반복해서 말한다. 그래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이때 한 젊은이가 보다 못해 달려가서 뭐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쪽 칸으로 사라진다. 참 꼴불견이다. 그래서 인간의 행실과 자연의 매화와 눈, 봄빛을 다투며 서로 지지 않으려 하매 그 우열(優劣)을 따져본다.

설중매(雪中梅)라 하듯 눈과 매화는 서로 인연이 각별하다. 둘은 아삼륙이 되어 모진 한파를 함께 견뎌냈다. 한데 봄기운이 돌면서 둘은 제각기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며 ‘서로 지지 않으려’ 다투고 있다. 중재(仲裁)에 나선 시인은 선뜻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가 난감(難堪)하다. 

 

고심 끝에 무승부로 타협한다. 빛깔 하면 눈이요, 향기라면 매화(梅花)라 했으니 어느 한쪽도 서운하진 않겠다. 눈과 매화는 그렇게 오순도순 혹은 티격태격하며 봄의 길목에 들어섰다. 저들의 빛깔과 향기에 시인의 화답이 없을 수 없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는 희고 맑은 빛깔 때문에 곧잘 눈과 혼동(混同)을 준 듯 시인들은 더러 헛갈렸던 경험을 시에 담았다. 송 왕안석(王安石)은 ‘매화’에서 “담 모퉁이 몇 가닥 매화(梅花), 추위 속에 저 홀로 꽃을 피웠네. 

 

멀리서도 그것이 눈이 아님을 안 건, 은은하게 전해지는 향기 때문이지”라 했고, 당 장위(張謂)는 ‘조매(早梅)’에서 “한 그루 매화 백옥처럼 흰 가지, 시골길 개울의 다리 곁에 서 있다. 매화가 물 가까이 있어 일찌감치 꽃 피운 줄 모르고 다들 겨우내 녹지 않은 눈인가 여기네”라 했다.

조매(早梅) 일찍 핀 매화 - 장위(張渭)

일수한매백옥조(一樹寒梅白玉條) 백옥 같은 가지의 매화 한 그루
형림촌로방계교(逈臨村路傍溪橋) 마을 길 멀리 다리 옆에 피었네
부지근수화선발(不知近水花先發) 물 가까워 먼저 핀 줄은 모르고
의시경동설미소(疑是經冬雪未消) 아직 녹지 않은 눈인 줄 알았네

중국 고전에서는 매화보다 매실(梅實)이 주로 언급되었다. 한시에서 매화꽃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은 후대의 일이다. '시경(詩經)'의 '사월(四月)'편에서 “산에 아름다운 초목(草木)이 있으니, 밤이요 매화로다”라고 하여 매화나무 자체를 언급(言及)한 것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매화의 꽃을 소재로 한 예는 매우 드물며 오히려 매실을 소재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서(尙書)'에서 국을 만들 때 염매(鹽梅)로 조절하듯 정치를 적절하게 행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 한 예이다. 염매는 매실을 뜻한다.  또 '시경(詩經)'의 '표유매(標有梅)'편에도 매실이 떨어지는 모습을 청춘이 가는 것으로 연상하여 시기를 놓치지 말고 결혼(結婚)을 하게 되길 바란다는 내용이 있다.

한시 작가들은 온갖 꽃들 가운데서도 매화를 가장 사랑했다. 그것은 꽃 가운데 매화를 노래한 한시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몇 편이 남아 있는지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대개 그렇다고 여긴다. 그런데 중국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매화는 겨울 추위를 이기고 피어 있는 한매(寒梅)였다. 그 빙옥(氷玉) 같은 자태는 군자의 지절(志節)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한시(漢詩)를 살펴보면 매화가 상징하는 폭은 의외로 넓다. 중국의 한시는 반드시 한매(寒梅)의 빙옥 자질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눈 속에서 피기 시작하는 조매(早梅), 음력 12월에 노랗게 피어난 황랍매(黄腊梅), 푸릇푸릇한 매실인 청매 등을 모두 예찬(禮讚)했다. 특히 당나라 때에는 아직 매화가 군자(君子)의 형상으로 상징화되기 이전이므로 매화가 피어난 경치, 정취(情趣) 자체를 더 중시했다.

어느 아파트 정원에서 찍은 홍매화를 올리며...

매화는 빙설(氷雪)이 가득한 한겨울에 봄소식을 알려 주는 사신(使臣)으로 인식되어 왔다. 매화가 봄소식을 알려 주는 사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고사(故事)는 대유령(大庾嶺)의 매화 이야기이다. 이른바 '남지개북지미개(南枝開北枝未開) 남쪽 가지에는 꽃이 피었는데도 북쪽 가지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라는 성어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대유령은 중국 5대 준령의 하나로 강서성(江西省) 대유현(大庾縣)의 남쪽과 광동성(廣東省) 남웅현(南雄縣)의 북쪽에 있는 큰 고개이다. 이곳은 한나라 무제 때 유승(庾勝) 형제가 남월(南越)을 정벌하고 그 고개를 지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당나라 현종 때 장구령(張九齡)은 이곳에 교통로를 열고 매화를 심었다. 그리고는 남북 기온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유렴의 남쪽 가지의 꽃은 이미 떨어졌는데도 북쪽 가지의 꽃은 비로소 피기 시작한다.” 이후 이곳에는 매화(梅花)가 많이 자라게 되어 이 교통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른 봄 피어나는 매화를 사랑했으며 그 고개를 매령(梅嶺)이라고도 불렀다.

당나라 시인 이교(李嶠)는 오언율시 “매(梅)”의 첫 연에서 '대유렴한광(大庾斂寒光) 대유령에 겨울 빛이 걷히고 남지독조방(南枝獨早芳) 남쪽 가지에 홀로 꽃이 피었네' 라고 했다. 오대(五代) 이후 한때 대유령 역로가 쇠퇴(衰退)하였지만 송나라 문종 연간에 채정(蔡挺)이 다시 관문을 열고 ‘매관(梅關)’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대유령(大庾嶺), 매령(梅嶺), 매관은 모두 험로의 혹한(酷寒)을 이겨 내는 봄의 생동적 힘을 상징하게 되었다.

한겨울부터 초봄에 이르기까지 곱게 피어난 매화는 은자(隱者)나 처사(處士)의 사랑을 받았다. '매화는 남성 가운데 가장 고아(高雅)한 풍격을 지닌 존재요, 여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상징(象徵)한다. 매화는 그 은은한 향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하게 은은한 향기는 담박한 운치(韻致)를 상징한다. 

송나라 때 진여의(陳與義)는 ‘매화’라는 시에서 눈 온 날의 매화 향기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객행만산설客行滿山雪 나그네 온 산의 눈을 밟고 가는데
향처시매화香處是梅花 향기 나는 곳이 곧 매화 핀 곳이로군.
정녕명월야丁寧明月夜 정녕 달 밝은 밤에
기취영횡사記取影橫斜 빗겨 있는 그림자 모습을 기억해 둔다네.

이 시는 대지를 덮고 있는 흰 눈과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를 조화(調和)시킨다.  매화가 희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지만 “향기 나는 곳이 곧 매화 핀 곳”이라고 한다. 제3, 4구는 달밤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매화나무 가지가 빗겨 있는 모습을 대비시킨다. 

 

당나라의 명재상이던 송경(宋暻; 廣平郡公)은 ‘매화’라는 시에서 매화를 요염(妖艶)한 여성에 비유한다. 또한 원나라의 살도랄(薩都剌)도‘등석관매(燈夕觀梅)’ ‘연등일 저녁에 매화를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취금투몽출남원(翠禽偸夢出南園) 비취 새가 꿈을 깨우며 남쪽 동산을 벗어나니, 작약빙자방녹준(綽約氷姿傍綠樽) 아리따운 빙옥 자태가 녹의주 동(綠蟻酒童)이 곁에 다소곳하다." 매화의 빙옥 같은 자태를 미인(美人)에 비유한 것이다.

매화의 꽃만 시적 소재(詩的素材)가 된 것이 아니다. 매화나무의 열매, 곧 매실도 즐겨 시의 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푸른 매실은 곧 싱싱하고 활기찬 젊음, 한여름의 활기를 환기(喚起)시켰다. 이백이 노랫가락 형식으로 지은 ‘장간행(長干行)’에는 행상하는 아내가 자신의 소녀 시절, 지금의 낭군이 청매를 흔들며 자신을 놀리던 광경을 회상(回想)한 부분이 있다. 각 구 5언, 모두 30구의 장편인데 앞의 여섯 구만 보면 이렇다.

첩발초복액妾髮初覆額 제 머리가 이마를 살짝 덮던 무렵
절화문전극折花門前劇 꽃 꺾어 문어귀서 장난할 때
랑기죽마래郞騎竹馬來 낭군은 죽마 타고 와서는
요상롱청매遶床弄青梅 침상을 돌며 청매를 흔들어 댔죠
동거장간리同居長干里 장간 마을에 같이 살면서
양소무혐시兩小無嫌猜 둘 다 어려서 부끄럼 없었거든요

'장간(長干)'은 남경시 남부에 위치한 번화한 저잣거리로 '간(干)'은 강물의 기슭이란 뜻이다. 이 시에서 열여섯 살의 아내는 사천성 쪽으로 행상 나간 남편이 양자강 상류의 구당(瞿塘) 급류에 있는 염예퇴(灩澦堆)라는 암초를 무사히 지나 돌아오길 빌고 있다. 젊은 아내의 독백(獨白)은 앞머리가 이마까지 늘어져 있었던 무렵의 추억(追憶)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녀가 꽃가지를 꺾어 들고 문 앞에서 놀고 있을 때 낭군은 죽마(竹馬)를 타고 와서는 침상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손에 든 청매를 흔들어 보여 준다. 둘이 다 장간의 마을에 살았고 둘이 다 아이적의 일이어서 조금도 부끄럼을 타지 않던 시절의 일이다. 아내는 그 일을 추억하며 낭군이 삼파(三巴)에서부터 배로 내려오는 날, 멀리까지 마중하러 가겠다고 다짐한다. 젊은 아내의 독백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낭군이 흔들어 대던 청매(靑梅)는 곧 그녀의 싱싱한 추억 속의 남편을 상징한다.

매화가 시인들의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 깨끗하고 고독한 모습 때문이다. 특히 송나라 이후로 매화의 상징성(象徵性)은 더욱 강화된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을 이겨 내는 차갑도록 고운 그 자태는 세간의 불의(不義)를 돌아보지 않고 홀로 서서 절조(節操)를 지키는 ‘특립독행(特立獨行)’의 지사(志士)를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매화를 갸웃하게 하거나 성글게 하거나 구부러지게 하는 것은 무지해 그저 돈이나 벌려는 백성 즉 매농(梅農)이 능히 그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인, 화가들이 숨겨 지닌 별난 기호(嗜好)를 매화 파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 주는 자가 있어서 매화 파는 사람들이 매화의 똑바른 가지를 찍어 내어 그 곁가지를 기르고 매화꽃의 조밀(稠密)함을 덜어 내어 어린 가지를 해치며 매화의 꼿꼿한 자태(姿態)를 제거하고 그 생기를 방해(妨害)하여 높은 값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니 그래서 장강(長江)과 절강(浙江) 일대의 매화들이 모두 병들고 만 것이다.

한겨울에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꽃술과 그 꽃술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는 밝고 맑은 영혼을 상징한다. 그래서 선사(禪師)들이나 도학가(道學家)들은 매화를 노래함으로써 절대 가치를 구현(具現)하려 한다. 매화의 그윽한 향내를 맡는 일은 곧 밝고 맑은 영혼(靈魂)을 일깨우는 행위를 뜻한다. 

 

어쩌면 시의 소재(素材)가 고정된 상징으로 바뀌는 순간 진부함을 띠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송나라 이후 매화를 노래한 시 가운데 상당수는 지나치게 소재 및 주제에 밀착(密着)시키려 했기에 품격이 낮다. 상징은 영활(靈活)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인은 진부(陳腐)하고 틀에 박힌 상징에 가탁(假託)하기보다도 사물과 자신의 관계를 늘 새로 모색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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