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역사를바꾼세계거장 50인
빌프리트 바츠 지음
사진은 참 묘한 예술이고, 그 역사가 짧은 예술이다. 사진은 글자 그대로 하면 빛(photo)으로 글쓰기(graphy)이다. 그 빛은 비추어서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추어서 저장한다. 사진의 문제는 빛에 있기보다는 빛이 저장하는 순간과 내용에 달려 있다. 사진이 시간의 주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빛과 시간은 얼마나 오묘한가? 하여 사진에 관한 책은 봄에 읽기 좋고, 보기 좋다. 사진은찍는 것이되 보는 것이고, 보는 때는 봄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이미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21세기, 한 장의 사진이 내포하는 의미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이 책 속에는“수공업에서 시작해 당당히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사진, 그 과정을 함께 한 사진가들의 이야기가 사진술의 발달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1839년 최초로 공식적인 사진 전시회가 열린 이후”, 이 책은 160여 년 동안 세계 거장 50인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만들어낸 역동적인 사진의 역사를 오밀조밀 말하고 있다.
어릴 적 동네에 사진관이 많았다. 오늘날 동네 사진관은 거의 사라져 매우 귀하다. 그것은 사진이 다른 예술장르와 달리 사진기에 힘입어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탓이다. 동네 사진관에 걸려 있는 사진들은 대부분 초상사진인데 엄숙하다. 자신의 초상을 사진 찍어 둔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계급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상징행위라고 볼 수 있다. 초상 사진은 가족이 모여 찍은 것부터, 혼자 찍은 사진에 이르기까지 비슷하게 엄숙하다. 필자의 경우, 사진관에 갈 때마다 옷을 단정하게 해야 했으며, 내 얼굴이 박힌 사진을 찾을 때마다 늘 반성해야 했다.
철이 들자, 나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사진집을 보는 일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임응식 강운구 김근원 안승일 김영수 여동완과 같은 분들의 사진집을 구해서 보았다. 그분들의 사진을 보면 시간이 온통 뒤죽박죽 된다. 과거와 현재의 구분이 애매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외국 사진집으로는 열화당에서 나온 손바닥만한 사진가 총서가 있었다. 그 후로는 산악사진에 빠져 앤셀 아담스, 갤런 로웰 등과 같은 작가들의 사진집을 수집하기도 했으며, 건축과 미술에 관한 사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떤 사진이든 사진을 들여다 볼 때 시간에 대한 이 성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흔히들 오래된 사진을 빛 바랜 사진이라고 말하는데, 실은 빛이사진에서 희미해지고 사라질수록 사진은 더 많은 것을 품게 되고, 말하게 된다. 마치 골동품이 유용성보다 무용성의 시간이 더 길수록 값이 나가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사진에 관한 책 가운데『사진과 사회』(지젤 프로인트)는 책 제목처럼 사진과 사회와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진은 대량 생산되고 소비되는 통에 그 개념이 희미해졌다. 사진에 대한, 그러니까 빛에 대한 믿음도 많아 사라졌다. 사진은 빛에 의한 진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만들어진 영상의 도구로서 급속도로 산업화된 위험한 산물이기도 하다. 복제예술이 현대예술의 특징이라면 사진은 그 한가운데 있다. 수동식 카메라에서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로의 변화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디카는 마약과 같은 욕망을 선사한다. 예술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언어를 지닌 사진은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수요를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이미지를 조작하는 위험한 예술임에 틀림없다.
『클라시커 50 사진가』는 카메라 렌즈에서 탄생된 순간의 기적, 사진의 역사를 이룩한 세계의 거장 50명을 중심에 놓고 있다. 독일에서 나온 이 책은 1)150년 세계 사진사를 이룩한 위대한 사진가 50인의 작품세계, 2)사진가들의 생애와 일화, 사진가들 간의 영향관계를 흥미롭게 설명한 50편의 글, 3)책 속의 사진 전시회, 200여 컷의 인상적인 사진 작품, 4)사진가들과 함께 성장해 온 카메라 및 사진기술의 획기적인 발달사, 5)각 사진가들의 업적과 예술사적 의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요약 평가를 담고 있다. 안치운 | 호서대학교 예술학부 교수, 연극평론가
[역사를 바꾼 사진들, 진실을 왜곡한 사진들] 사진에 생명력 불어넣는 건 사진 이면의 ‘진실’
기억은 사진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기억하는 중요한 역사의 한 장면은 사진인 경우가 많다. 시대를 대표한 사진들을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진실과 가려진 진실을 확인해 본다.
최근 두 가지 주요한 미디어 환경 변화는 저널리즘의 객관성을 위험에 빠뜨렸다. 하나는 재정적인 문제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다. 기자와 포토저널리스트 간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사가 전달되거나 사진이 송고되는 속도가 사실의 정확성이나 사진의 진위보다 더 중요하게 됐다. 디지털 사진 조작의 유연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주류 저널리즘의 도덕 불감증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현상이다.
사건의 핵심을 보여주기보다 새로운 시각이나 속임수에 탐닉하는 피상적인 접근이야말로 포토저널리즘의 위기를 자초하는 심각한 문제다(Squires, 1996). 기사 작성과 사진 촬영은 헌신과 끈기, 시간이 필요하지만, 속보 경쟁으로 인해 한 가지 상황을 충분히 탐구해 진실을 찾는 일이 어렵게 됐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 미국 미디어의 신뢰성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Swift, 2016).
로이터의 프리랜서 사진가 아드난 하즈(Adnan Hajj)는, 2006년 레바논 베이루트 시내의 폭격 사진에서 연기를 실제보다 더 많고 진하게 보이게 하려고 포토샵으로 사진을 조작했다.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연기의 형태에 의문을 품은 한 독자가 문제를 제기해 결국 위작으로 판명난 이 사건은 포토저널리즘의 윤리 문제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연출이나 위조의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기억하고 있는 조 로젠탈(Joe Rosenthal)의 ‘이오지마 전투 승전 사진’은 너덧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됐다.[사진 1] 물론 이 사진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니지만, 완벽한 이미지를 향한 포토저널리스트의 욕망을 잘 드러낸다. 연출이나 왜곡의 문제는 전쟁이나 기아, 자연재해 등과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촬영할 때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미디어 산업 안에서 사진 재현은, 독자의 시선을 사건의 본질보다는 정부 지도자의 담론 혹은 상업적인 관심거리로 옮기는 것을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Griffin, 2004).
저널리스트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주제가 결정되는 순간 다른 많은 것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진실 혹은 거짓을 말하느냐의 여부는 카메라 프레임 안 ‘현실’의 일부분을 포함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진가의 의도에 의존한다. 사진 안에 없는 것은 여전히 ‘비가시적’일 수밖에 없다. 포토저널리즘의 역설은 사진이 객관성과 주관성이 결합한 산물(Rehman, 2018)이라는 점이다. 포토저널리즘 윤리 문제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누가 보는 행위를 하고, 이들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유로 사건을 보고, 출판하는지의 문제다(Newton, 2009).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말한 것처럼 “사진은 무엇이 바라볼 가치가 있고, 우리가 관찰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변화시키고 확대한다(Sontag, 2003).” 사진은 증거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가시적인 현실을 만들어냄으로써 현실을 강화한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상당 부분이 사진에 의해 구성돼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선 시대의 아이콘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사진의 역사적 의미와 이런 사진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회 변화를 끌어내는 포토저널리즘
1988년 아동노동법 개정 기념우표에 등장한 루이스 하인(Lewis Hine)의 사진은 아동 노동의 죄악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이미지다.[사진 2] 당시 열두 살의 나이로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애디 카드(Addie Card)는 사진 속에서 낡고, 더럽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채, 어깨에서 방금이라도 옷이 벗겨질 것처럼 한쪽 주머니가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단순히 열두 살 소녀 정도로만 사진 정보를 제공했던 당시의 관행을 넘어 루이스 하인은 아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사진 설명에 명시했다. 이는 단순히 사진 속 인물이 사회 캠페인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인격체임을 드러내려는 하인의 의도였다. 이 정보를 통해 저널리스트 조 매닝(Joe Manning)이 아이의 가족과 하인이 촬영한 다른 아이들의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사진이 포토저널리스트, 사진 속 인물, 독자의 관계성 안에서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루이스 하인은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인 사실과 결합하는 오늘날의 행동주의(activism) 관행의 선구자고, 이는 코넬 카파(Cornell Capa)가 ‘관심의 사진가(concerned photographer)’라는 용어로 정의한 사진가 유형의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Bogre, 2012). ‘관심의 사진’은 포토저널리즘 사진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 보도사진가 집단 매그넘(Magnum)이 표상하는 바이고, 현대의 ‘옹호(advocacy)’ 저널리즘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사진이 단순히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과 사진 속 대상이 ‘착취’되는 것을 막고, 그들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역사적 아이콘이 된 사진과 가려진 진실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의 ‘이민자 어머니(1936)’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를 상징하는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실제 이 가족의 삶, 특히 어머니인 플로렌스 톰슨(Florence Owens Thompson)의 삶과 당시의 경험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사진은, 대공황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노동자 계층의 외부모 가족을 보여준다.[사진 3]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남편과 장성한 아들들은 자동차 라디에이터를 고치기 위해 시내에 간 상태이고, 사진에 보이지 않는 장성한 딸도 있었다(Hariman & Lucaites, 2007). 도로시아 랭은 이 사진을 촬영할 때 톰슨의 이름조차 몰랐고 자신의 작업 노트에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이 죽은 것으로 기록했다. 역사의 아이콘이 된 이 사진의 주인공인 톰슨은 이 사진으로부터 아무런 경제적 이득도 취하지 못했다.
물론 이 사진은 미국의 대공황기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고, 피폐한 농촌 지역을 위한 많은 도움의 손길과 정책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포토저널리스트, 사진 속 인물, 독자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이어주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포토저널리즘의 중요한 덕목인 ‘진실’을 들려주는데 실패했다(Maksel, 2002). 이 사진은 사진 속 주인공의 진정한 인생 스토리를 잠재우면서 왜곡된 현실만을 드러냈다. 도로시아 랭뿐만 아니라, 당시 농촌 지역을 함께 취재했던 워커 에번스(Walker Evans)는 필름에 대상의 정확한 표정을 포착해냈다고 만족할 때 비로소 그 사진에 최고점을 줬다고 한다. 이는 빈곤, 존엄성, 착취에 관한 사진가의 관념을 보여줄 수 있는 정확한 표정을 의미한다(Sontag, 1977). 사진가의 카메라가,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보다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재현하고자 했던 현실을 창조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미다.
사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상호관계성
AP의 닉 웃(Nick Ut)이 1972년 촬영한 ‘네이팜탄 피해 소녀의 사진’[사진 4]은 베트남 전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네이팜탄 공격을 당하는 마을에서 불이 붙은 옷을 모조리 찢어 버리고 알몸으로 울부짖으며 뛰어나오는 소녀 킴 푹(Kim Phuc)의 사진은 베트남 전쟁의 잘못된 부분을 일깨우는 역사적 상징이 됐다. 사진 촬영 직후, 닉 웃은 죽을 수도 있었던 아이의 치료를 도왔고, 정기적으로 그녀를 찾아 많은 지원을 했다. 성인이 된 이후 킴 푹은 CBS TV에 출연해 전쟁의 참혹함을 증언했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로부터 평화문화친선대사로 임명됐다. 사진 안에만 머물 수도 있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사진과 함께 더 깊은 층위의 의미로 발전할 수 있었다.
물론 촬영 대상을 돕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고 해서 더 많은 진실을 드러내는 사진은 아니다. 사진은, 사진 속에 촬영된 사람과 그 사진을 보는 사람 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즉각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우리의 현실 감각을 확장할 수 있고, 그 현실에 대해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맥락을 형성할 수 있다(Furstenau, 2007). 사진을 보는 독자의 역할에 대해 수전 린필드(Linfield, 2010)는 사진의 모호성을 발견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진 프레임 밖의 세계와 이 사진들을 연결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서 사진이 비로소 완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다.
손택(1997)은 이를 사진의 ‘열린 상호관계성’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때로 윤리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사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AP의 리처드 드류(Richard Drew)가 촬영한 ‘떨어지는 남자(The Falling Man, 2001)’[사진 5]는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사진이다. 이제는 세계무역센터 테러의 아이콘이 된 이 사진은 발표되자마자 대중으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곧이어 이 사진은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많은 사람의 알고 싶은 욕구를 끌어냈다. 드류는 역사적 사건을 촬영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신원 확인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9·11 테러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 남자가 타워 중 하나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조너선 브라일리(Jonathan Briley)임을 밝혔다(Matheson, 2015). 이후 테러 현장을 취재했던 저널리스트들의 노력으로 이날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일화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최초의 이미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완성된 이야기에 도달하려고 노력했고, 이를 통해 독자는 사진에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전 마이젤러스(Susan Meiselas)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을 2년간 촬영해 《니카라과, 1978-1979》라는 작품집으로 출간했다. 그녀의 작품 ‘화염병을 든 남자(Molotov Man)’는 타임(TIME)의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100장의 사진’에 선정됐다. 하지만 2년간의 취재로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자신이 촬영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기 위해 12년 후 그들을 찾아 니카라과로 돌아가 두 개의 다큐멘터리 영화 <혁명으로부터 본 영상(Pictures from a Revolution)>과 <다시 구성하는 역사Reframing History)>를 만든다. 영화 속 사람들은 자신이 촬영된 사진을 보면서 혁명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사진 속 인물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었고, 자신들이 경험한 현실과 그녀의 사진과의 연관성을 새롭게 했다. 그 결과 사진은 혁명의 의미와 사람들의 고통에 관한 정치적 담론장이 될 수 있었다.
사회 활동가로서의 포토저널리스트
포토저널리즘이 더 많은 사람이 사회문제에 좀 더 관여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기 위해 포토저널리스트는 단순히 촬영자가 아닌 적극적인 활동가 역할을 해야 한다(Bogre, 2012). 에드 카시(Ed Kashi)는, 나이지리아 니제르 삼각주 지역의 50년 이상 지속된 석유 개발과 그에 따른 지역 문제를 다룬 포토에세이를 2013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특집으로 게재했다.[사진 6] 이 기사에 포함된, 갓 잡은 염소를 옮기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는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성 독자의 관심을 끌게 됐다. 이후 그녀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아이를 위한 장학 기금을 마련했고, 아이가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조너선 토르고브니크(Jonathan Torgovnik)는 1994년에 르완다 대량 학살 과정에서 강간 당한 여성과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을 촬영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강간으로 임신해 출산한 여성과 아이들의 복잡한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는 이 여성들과 아이들에 관한 포토 에세이를 만들기 위해 르완다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크게 감동하고 뉴욕으로 돌아와 르완다 재단(Foundation Rwanda)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르완다 재단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중등교육 학비를 지원하기 위해 100만 달러(약 11억 9,000만 원) 이상을 모금했다. 토르고브니크와 같은 행동주의 사진가는 정치적 관점의 세계관을 거부하고, 왜곡된 역사와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활동가로서의 포토저널리스트의 역할을 가장 잘 보여준 작업은 가정 폭력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도나 페라토(Donna Ferrato)의 ‘적과의 동침(Living with the Enemy)’ 프로젝트다. 그녀는 폭력 가정의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경찰 출동차를 6,000시간 이상 함께 타고 다녔다. 그녀는 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보호소와 폭력 남편들이 수감된 교도소를 빈번하게 방문하고 생활하면서 폭력 남편과 그를 떠나지 못하는 아내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사진으로 보여줬다. 페라토의 행동주의는 사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가정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고, 여성 보호소를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그녀가 설립한 단체는 전 세계적으로 400회 이상의 전시를 개최했고,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모금했다.
포토저널리스트는 보이지 않는 곳에 빛을 비추는 사람
많은 미국인이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당하는 이미지들에 근거해 자신의 삶이 나뉘는 것을 경험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미국의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미디어 이미지로부터 이 사건을 알게 됐다. 이 비극적 이미지들이 셀 수 없이 반복 재생되면서 사람들은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분열되기도 하고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의 세계관이 변화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라크를 공격하고, 이라크의 정권교체를 조율하기 위한 세계적인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동일한 9·11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이용했다(Rehman, 2018).
조작된 사진은 한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본 독자들조차 조작된 사진에 의해 사건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더 놀라운 사실이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보도가 정확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가진 독자라 하더라도 추후 보도되는 왜곡된 사진은 이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Newton, 2009).
이미 역사적 순간이 된 사진 속 현실은 상징적인 순간 그 이상으로 확장되기를 요구한다. 포토저널리스트는 사진의 대상이 된 사람과의 진정한 ‘배려와 보살핌’의 관계성을 만들어야 하고, 사진을 보는 우리 또한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담은 사진을 보는 독자는 사진 속 사람과 같은 시간 속에 공존해야 한다. 이는, 핍박 혹은 분쟁의 이미지 속에서 실제 존재하는 사람을 봐야 하는 도덕적 책임감을 말한다(Azoulay, 2008). 특히 개인에게 가해진 부당함과 고통을 포함하는 내용의 사진일 경우, 그 강력한 사진의 의미는 사진 속에 담긴 개인의 경험과 사진 이미지와의 관련성을 통해 더 깊어질 수 있다. 그때 사진의 의미는 ‘단면’이 아닌 ‘다면’화되면 서 살아 숨 쉴 수 있다.
포토저널리스트는 보이지 않는 곳에 빛을 비추고, 약자의 작은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숨겨진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다. 무솔리니의 전체주의 정권하에서 저항운동을 펼쳤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나는 무관심한자들을 미워한다”고 했던 것처럼,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관심’이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더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포토저널리즘의 역할은 단순히 타자의 고통을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평화, 평등, 연대의 가치를 더 확장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세계 사진 거장들의 '결정적 순간'을 한 자리에...‘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 로버트 프랭크 Robert Frank, 세바스치앙 살가두 Sebastiao Salgado, 로베르 두아노 Robert Doisneau, 헬뮤트 뉴턴 Helmut Newton... 사진의 역사를 한 페이지로 요약한다면 그들의 이름은 아주 굵은 글씨로 기록될 터이지요.
이들의 사진을 바로 지금, 서울에서 한데 묶어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사진의 마이더스 손'이라 불리는 이미지 전달자 로베르 델피르(Robert Delpire/French, 1928~)의 사진인생 60년을 위한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델피르와 친구들>' 전시가 오는 12월 17일(금)부터 2011년 2월 27일(일)까지 약 73일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립니다.
2009년 프랑스 아를 사진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10년 유럽사진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전시를 마친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 델피르와 친구들 >'은 해외 첫 순회전시로 한국을 선택했습니다. 이 전시는 사진뿐 아니라 시각문화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델피르의 업적에 대한 증언이자 다채롭고 중대한 경력의 요약이라 할 만합니다.
거대한 출판인이자 전시기획자, 예술디렉터, 영화제작자인 로베르 델피르의 사진인생 6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사진 작가인 그의 친구들이 헌정한 185점의 주옥 같은 오리지널 프린트와 150권의 사진책, 4편의 영화를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지요.
전시회에는 너무도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찰나의 순간’과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 등 유명 작품들과 독일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 등의 패션 누드 사진 등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이밖에도 로버트 프랭크, 요세프 코우델카, 윌리엄 클라인, 르네 뷔리, 레몽 드파르동 등 약 50여명의 델피르 친구들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사진사 초기의 작품들부터 신화가 된 사진들이 고색창연하게 전시될 예정이며 '무하마드 알리'를 다룬 윌리엄 클라인의 최고의 단편영화와 델피르가 제작한 화사한 광고영상까지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이번 전시는 지난 60여 년 동안 사진과 대중의 만남을 끊임없이 주선하며 사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쓴 델피르와 세계 사진계 거장들의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수준높은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관람료는 성인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으로 조금 높은 편이지만, 찾아볼 가치는 충분해 보입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갖고 계산 분이라면 '델피르와 친구들' 무료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를 통해 미리 내용도 살펴보고, 티켓도 20% 할인혜택을 얻으실 수 있다니까 참고하시구요. 게다가 어플을 통해서는 거장들의 작품을 휴대폰에 따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고 하네요.
혹독한 겨울을 녹일 뜨거운 사진전, 짬을 내 그들의 ‘결정적 순간’을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문의 02-710-0765ㆍwww.delpirekore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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